4/6/2025 | 사순절 다섯번째 주일
마음속 깊이 간직하렵니다 (I Have Hidden Your Word in My Heart)
유민용 목사
시편 119:9-16
9 ○ 청년이 어떻게 해야 일생 동안 깨끗하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길, 오직 그 길뿐입니다. 10 내가 온 마음 다 바쳐 주님을 찾겠사오니,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주소서. 11 내가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하렵니다. 12 찬양을 받으실 주님, 주의 법도를 내게 가르쳐 주소서. 13 주께서 친히 입으로 말씀해 주신 그 모든 법도를 내가 입술로 크게 소리 내어 낭독하렵니다. 14 참으로 주님의 교훈을 배우고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물을 얻는 기쁨보다 더욱 큽니다. 15 내가 주님의 가르침을 묵상하고, 주님의 법도를 깊이 살펴보렵니다. 16 오직 주님의 율례를 나의 기쁨으로 삼고, 언제든지 주님의 말씀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쉬운말 성경)
9 How can a young person stay pure?
By obeying your word.
10 I have tried hard to find you—
don’t let me wander from your commands.
11 I have hidden your word in my heart,
that I might not sin against you.
12 I praise you, O Lord;
teach me your decrees.
13 I have recited aloud
all the regulations you have given us.
14 I have rejoiced in your laws
as much as in riches.
15 I will study your commandments
and reflect on your ways.
16 I will delight in your decrees
and not forget your word.(New Living Translation)
하나님 말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말씀이 우리 삶에 힘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필요합니다. 만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주어졌는데 그 말씀을 따라가게 되면 원수는 말씀에 의해서 친구가 됩니다. 실례로 손양원 목사님께서 자신의 두 아들을 살해한 이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서 예수를 믿게 한 것은 그분이 말씀을 따를때 임했던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아집과 인간의 본성으로 가득한 현실속에서 말씀에 기록된 사랑과 용서는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을 통하여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청년이 어떻게 일생동안 깨끗하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합니다. 질문하고 청중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은 지혜문학의 전형적인 기법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길, 오직 그 길뿐이라고 대답합니다.(9절) 어떻게 하면 일생동안 말씀을 지키며 깨끗하고 온전한 삶을 살수 있을까요? 이 기도를 하는 시인은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따라가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말씀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통해 지금은 희미하게 하나님을 보지만 그때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고전 13:12)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라면, 말씀 앞에서는 우리의 연약함도 강팍함도 훤히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이들이 입을 옷은 온유함과 겸손함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께서 보여 주신 삶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3:15 오직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모시고, 또 여러분이 품고 있는 영생의 소망에 대하여 그 근거를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답변할 것을 항상 준비하고 있되, 3:16 온유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또 언제나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만일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 준 마지막 편지라면, 아버지의 말씀은 그 아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둘째 아들은 세상의 방법을 택하고 아버지를 떠나게 됩니다. 그는 스스로 아버지의 살아계심을 부정하고 유산을 미리 요구하며,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던 아들은 돼지가 먹는 열매조차 먹고 싶었으나, 주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황속에 이르러 다시 아버지의 존재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때 아버지의 반응은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으로 아들을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완전하지 않고 자격없는 부족한 우리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겠다고 고백하며 살아갈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길이 됩니다.
시인을 보시기 바랍니다. 삶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내가 온 마음 다 바쳐 주님을 찾겠사오니,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주소서.(10절)라고 고백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둘째 아들의 뉘우침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졌고, 일꾼으로라도 좋으니 아버지 품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돌아옵니다. 세상에 많은 갈래의 길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이들에게는 이처럼 우리의 옛모습이 힘을 잃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됩니다.
본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절입니다. 히브리어 22개의 알파벳에 따라 배열된 22연의 시입니다. 본 시편을 각 연마다 알파벳 순으로 규칙적으로 짜놓은 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이 시를 쉽게 외우고 노래하도록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릴적 부터 자녀들이 밀씀을 암송하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크게 낭독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린 자녀들에게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글을 몰라도 암송한 말씀은 성장하면서 자녀의 삶에 있어서 큰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 책을 먹으라'는 그의 책에서 강아지가 뼈다귀를 물고 음미하며 씹는 것처럼 말씀의 유익함과 즐거움으로 읽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합니다. 말씀의 뿌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데 있습니다.
11 내가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하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에서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왕의 명령과 이방 문화의 요구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살기로 정했습니다. 이 결단은 왕의 명령에 불복하는 위험성과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하며,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바벨론 왕 앞에서 그들의 탁월함을 드러내셨습니다.
바울도 로마감옥에 2차로 투옥되어 순교할 것을 예감했습니다. 그는 제자 디모데에 편지를 쓰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 고난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믿음 안에서 굳게 서서 사역을 해나가야 된다고 편지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1절과 16절,17절입니다. "1 디모데여, 그대는 이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말세에 고난의 시기가 올 것입니다.....16 성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으로,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책망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게 하고, 또 의로써 훈련시키기에 아주 유익한 책입니다. 17 그리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온전히 준비시켜 줍니다."
바울은 말세의 시기에 넘쳐나는 세상의 풍조들을 열거하고 난 후에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세상의 풍조와 가치관으로 인하여 겪게 되는 고난임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럴때 일수록 말씀을 굳게 믿고 진리 안에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신앙생활은 세상의 기준과 내 삶의 편안함을 넘어서 우릴 위해서 죽으신 주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면 우리의 삶이 구별되어 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자리잡을 때 자연스럽게 세상의 가치관이 분별되어 집니다.
2024년 빛과 소금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청년입니다. 지금처럼 모바일을 이용한 인터넷은 상상도 못하던 느린 랜선의 초기 인터넷 시대였는데, 숙소 예약 하나 없이 배낭 하나 달랑 들고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입국하여 숙소도 찾지 않고 처음 방문한 곳은 바로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내셔널 갤러리’였습니다. 의대 공부로 바쁜 시간에도 틈나는 대로 미술사에 대한 뼈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베데스다 연못’ 그림을 보며 요한복음 5장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이후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하며 QT 중에 같은 본문을 묵상하며 주님께 이러한 환자를 보내주신다면 주의 뜻으로 알고 깊이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놀랍게도 그날 한 38세 남성이 근긴장이상증으로 진료실을 찾았고, 마침 요청하지도 않은 보툴리늄톡신 주사가 제약회사로부터 기부되었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시술했고, 일주일 후 환자의 손이 기적처럼 펴졌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진료에 직접 개입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자신이 바로 혈기 마른 병자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손이 마치 자신에게 다시 내미시는 듯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요 5:8)라는 말씀 한구절의 깨달음은 그를 다시 일어나 걸으라고, 네 걸음이 네 능력이 아닌 내가 준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시는 듯했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주의 교훈과 율례를 따르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고백합니다. 큰 재물을 얻는 기쁨보다 더 크다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으로 살던 바울에게 율법 자체는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지키면서 기쁨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을 만나고 난 뒤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새로운 삶에 눈을 뜨고 난 뒤에 그의 순종과 겸손은 기쁨으로 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으로 내어 주는 삶에 자신을 헌신합니다. 그가 고난을 자기 죽음의 기회로 삼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섬김의 길로 걸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마시는 순간 그 잔은 지나가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는 자기 십자가는 우리의 짐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멍에를 함께 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기 십자가를 지게 될수록 주님이 함께계심을 더 깊이 깨닫고 부활의 기쁨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시인의 고백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참으로 주님의 교훈을 배우고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물을 얻는 기쁨보다 더욱 큽니다. 15 내가 주님의 가르침을 묵상하고, 주님의 법도를 깊이 살펴보렵니다. 16 오직 주님의 율례를 나의 기쁨으로 삼고, 언제든지 주님의 말씀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안하고 평탄한 길을 원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하기 보다는 익숙한 길을 걷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새롭게 걷는 길 낯선 길을 걸을 때 만나는 인생의 일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도록 붙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도전하며 꿈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삶은 때때로 외롭고 고된 시간이겠지만 그때마다 시인처럼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말씀 안에서 답을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때, 불안하고 두려울때 말씀을 붙드는 은혜를 깊이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순종할때에 말씀의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교훈을 전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정교하게 지어졌지만, 마지막 절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납니다. "내가 길 잃은 양처럼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사오니, 주께서 오셔서 주의 종을 찾아 주소서. 나는 주님의 계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시 119:176)
시편의 기자처럼 우리도 때때로 길 잃어버린 양처럼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친히 찾아 오시는 분이십니다. '주의 종을 찾아 주소서'라고 고백할때에 책망하시기 보다 우리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인생에서 마음이 닫혀 있고 차가운 바람이 불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흔드는 말에 집중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말씀의 힘이 느껴지지 않고 무겁고 낯선 시간이 그저 버겁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삶의 기쁨도 느껴지지 않고 불평의 언어들이 삶에 채워지는 그런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바로 말씀을 품고 기도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내 삶의 가장 연약한 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성도들의 인생 길을 열어 가십니다. 길 잃은 양과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갈 2:20) 하나님 안에서 새생명을 부여받고 말씀을 따라갈때에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사순절 기간동안 오늘의 양식의 말씀 구절을 필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암송하다 보면,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고 어느날 내게 다가온 말씀 한 구절이 믿음의 여정에서의 방향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깨닫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매 순간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셨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주 동안도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하나님 말씀에 붙들려 보시고 하나님 말씀을 마음 깊이 담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의 언어가 되고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이 되어 말씀을 삶속에서 지키고 살아 간다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변화 될 것입니다.